앞 글에서 탄소의 3가지 주요 혼성화 유형의 혼성화 단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혼성화 유형에 따라 어떤 공유 결합형태를 갖게 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단일, 이중, 삼중 결합은 논리적으로 혼성화의 유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탄소는 공유 결합을 이루려 할 때, 몇 개의 결합 파트너와 결합할 것인가에 따라 자신의 2번째 껍질에 있는 s오비탈과 p 오비탈을 혼합하여 혼성 오비탈을 생성할 준비를 한다. 두 오비탈의 에너지 레벨을 동등하게 만든 후, 4개의 원자와 결합하려면 ‘sp3 혼성화’라는 과정으로 4개의 sp3 오비탈을 만들고, 3개의 원자와 결합할 때는 ‘sp2 혼성화’를 통해 3개의 sp2 오비탈을, 그리고 2개의 원자와 결합할 시에는 ‘sp 혼성화’ 방법으로 2개의 sp 혼성 오비탈을 생성한다. 탄소가 이러한 다양한 혼성화를 하는 것은 더 강하고 튼튼한 시그마 결합을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궤도가 직접적으로 얼마나 겹치는 가는 얼마나 강한 공유결합을 이룰 수 있는가의 척도라 할 수 있다. 오비탈은 전자가 있을 확률밀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두 원가 간에 오비탈에 많이 겹친다는 것은 전자밀도가 높아져 더 강한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혼성화는 겹침의 효율을 더 향상하고, 결합 각도를 최적화하여 원자들 간의 반발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아주 센스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그마(σ) 결합과 파이(π) 결합
시그마 결합은 다양한 오비탈 간에 일어날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이듯, 혼성화 오비탈도 여러 시그마 결합의 한 예이다. 시그마 결합은 결합되는 두 원자의 핵을 이었을 때 생기는 축을 중심으로 전자 밀도가 대칭적으로 분포한다. 쉽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흔히 ‘두 원자가 단일하게 공유결합한다’라고 말할 때 바로 그 결합이 시그마결합이다.
즉, 시그마 결합을 이룬 것이 단일 결합을 이룬 것이다. 유기화합물의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형태이자, 여기에 다른 작용기나 원자들이 추가되어 수많은 유기 화합물이 형성되는 골격 역할을 하는 탄화수소(hydrocarbons)를 떠올려보자. 탄화수소는 이름 그대로 탄소와 수소만으로 이루어진 화합물로서 그 구조 내에 탄소와 탄소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에 따라, 모두 단일 결합으로만 결합되어 있는 경우 알케인(alkane), 구조 내 하나라도 이중 결합이 있으면 알켄(alkene), 삼중 결합이 포함되어 있다면 알킨(alkyne)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탄소가 중심이 되고 이를 수소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갖는 탄화수소화합물에서 탄소는 수소 또는 탄소와 단일 결합을 이룬다.
알케인은 중심에 탄소가 오직 하나인 메테인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참고로 모두 알케인들은, 탄소 수가 몇 개인가에 따라 그 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접두사와, 끝에는 알케인을 나타내는 ‘-ane’ 접미사를 붙여 순서대로 Methane, Ethane, Propane, Butane, Pentane, Hexane, Heptane, Octane, Nonane, Decane 등으로 명명한다.
다시 시그마 결합으로 돌아가서, 알케인의 탄소는 모두 단일 결합을 하며 주변과 4개의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기억하자. 즉, 알케인은 모두 4개의 시그마결합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알케인의 최소형태인 탄소 1개의 메테인(CH4)이 sp3 혼성화를 설명하기 위한 예로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중 결합을 갖는 나머지 탄화수소 알켄과 알킨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중 결합과 삼중 결합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하나의 단일 결합을 담고 있다. 시그마 결합이 없는 파이 결합은 없다. 즉, 이중 결합은 1개의 단일 결합(시그마 결합)과 1개의 파이 결합을, 삼중 결합 역시 1개의 시그마 결합과 2개의 파이 결합을 갖는다. 시그마 결합이 다양한 오비탈에서 생성되는 것과 달리, 파이결합은 항상 p오비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 혼성화를 이루기 위해 s 오비탈과 p 오비탈이 혼합되고 에너지레벨이 같아진 상태에서 혼성화에 참여하지 않고 남은 p 오비탈끼리 결합하면서 이루어진다. 물론, 혼성화와 관련 없이 두 개의 p 오비탈끼리 파이 결합을 이루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질소 2 원자가 만난 N2 분자이다. 중요한 것은 p 오비탈에서 생성된다는 점이다. 그리스어로 p가 π이다.
사실 나는 이중, 삼중 결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뜯어보아도 도대체 어떻게 두 원자가 3개의 공유결합을 할 수 있을까? 잘 이해가 가지않았다. 나의 부족한 상상력을 탓했다. 오비탈이 대체 어떻게 3번에 걸쳐 겹쳐서 공유 결합을 이룬다는 것인가. 이는 3개의 동일한 단일 결합만을 상정해 놓고 이해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파이 결합을 이해하고 나서야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파이 결합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결합하는 원자의 핵을 선으로 연결했을 때, 이 축을 중심으로 측면으로 오비탈들이 겹치는 경우에 일어난다. 즉, 전자 밀도가 핵들 사이의 축에는 존재하지 않고, 축의 수직으로 위 또는 아래, 오른쪽 또는 왼쪽에 분포하게 된다. 시그마 결합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결합인 것이다. 파이 결합은 항상 시그마 결합이 생성된 후, 추가로 형성되는 결합이다. 자 시그마 결합과 파이 결합에 대해 간략히 맛을 보았으니, 시그마 결합과 파이 결합, 또는 단일 결합과 이중, 삼중 결합을 혼성화와 연결하여 자세히 알아보자.
알케인 탄화수소와 혼성화 유형 간의 관계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탄화수소는 결합 구조가 탄소와 수소가 모두 단일한 결합을 이루고 있는 알케인(alkane), 이중 결합이 들어있는 알켄(alkene), 삼중결합이 포함되어 있는 알카인(alkyne)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자연계에서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알케인이다. 알케인을 구성하는 탄소들은 탄소 또는 수소와 총 4개의 공유결합을 형성하며, 이 공유결합은 각각 1개의 결합 즉 단일 결합이며 따라서 모두 시그마(σ) 결합들이다.
알케인 화합물들은 그 구조가 탄소가 일렬로 나열된 형태의 사슬형(메테인(CH4)), 사슬에서 일부 뻗어 나온 가지형, 고리형(사이클로헥산(C6 H12)) 등으로 다양하지만, 구조에 관계없이 탄소와 탄소, 또는 탄소와 수소가 오로지 단일 결합을 통해 이루어져 있으면 모두 알케인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탄소 원자가 4개의 단일 결합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일어나는 sp3 혼성화와 알케인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이중 결합을 포함하는 알켄은 sp2 혼성화와, 삼중 결합을 포함하는 알카인은 sp 혼성화와 관련 있다. 혼성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새로운 오비탈은 단일 결합을 형성하는 시그마 결합에, 혼성화에 참여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던 p 오비탈들은 파이 결합을 이룬다. 자세히 살펴보자.
알케인과 sp3 혼성화
먼저 가장 간단한 알케인인 메테인과 에테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여러 가지 표현방법으로 나타내 보았다. 4개의 혼성오비탈이 4개의 수소와 각각 단일(시그마) 결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알켄과 sp2 혼성화
알켄은 이중 결합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탄화수소 화합물이다. 에틸렌(ethylene)을 예로 들어 sp2 혼성화와 이중 결합 그리고 파이 결합 간의 관계를 살펴보자. 에틸렌은 탄소 2개에 수소가 4개가 결합된 구조를 갖는다. 에틸렌은 과일을 빨리 익도록 만드는 과일 성숙 호르몬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2개의 탄소는 각각 혼성화를 거쳐 3개의 sp2 오비탈과 혼성화에 참여하지 않고 남은 1개의 p 오비탈을 생성하므로, 총 6개의 sp2 오비탈과 2개의 p 오비탈이 총 5개의 단일 결합(시그마 결합)과 1개의 파이 결합을 이룬다.
sp2 혼성화를 이루는 탄소의 구조를 보면, 3개의 sp2 오비탈들이 서로 120॰도 각도를 유지하는 삼각형 구조로 같은 평면상에 위치한다. 이러한 구조는 원자가껍질 전자쌍 반발 이론(VSEPR: Valence shell electron pair repulsion theory)에 의해 설명되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전자들이 음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같은 극인 전자들이 만나면 서로 밀어내는 반발력이 생기기 때문에 이 힘을 최소화하여 에너지레벨을 낮게 유지하여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중심 원자에 결합되어 있는 전자쌍들은 최대한 온 힘을 다해 서로로부터 멀리 떨어져 존재하고자 한다. 이러한 특성을 통해 분자가 어떠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질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sp2 혼성화의 경우 중심 원자 주변에 3개의 전자쌍이 존재하며 전자쌍 반발에 의해 120॰도 각도를 유지할 때 최적의 구조가 된다. 그리고 이 평면 삼각형 구조에 추가로 혼성화에 참여하지 않은 남아있는 p 오비탈이 수직방향으로 위치하게 된다. 에틸렌은 분자구조식을 참조하며 2개의 탄소가 결합을 위해 어떻게 배치되는지 그림으로 나타내보면 위 그림과 같다.
두 탄소의 혼성 오비탈은 모두 평면상에 존재하는데 이 평면을 노란색으로 표시하여 보았다. 관찰자와 가까운 쪽은 쐐기(wedge) 모양으로 관찰자와 먼 쪽은 관찰자와 먼 것은 두꺼운 실선(dash)으로 표시하여 원근을 첨가하여 3차원 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두 탄소가 4개의 수소와 그리고 1개의 탄소와 탄소 간의 정면 오비탈 겹침이 일어나므로 총 5개의 단일(시그마) 결합이 형성되며, 나머지 2개의 p 오비탈 역시 나란히 평형하여 겹치게 되어 결합이 성사된다. 실제로 p 오비탈의 겹침은 상당히 넓은 범위로 일어나고, 그 겹친 공간에서 전자를 공유하면서 파이(π) 결합을 형성된다.
시그마 결합이 두 결합 파트너의 원자핵을 연결한 축으로 겹치는 데 반해, 파이 결합은 원자핵을 통과하지 않고 원자핵의 위나 아래, 삼중 결합의 경우 이에 더해 왼쪽과 오른쪽으로도 평행 겹침을 하게 된다. 시그마 결합은 매우 강한 결합을 형성하는 데 반해, 파이 결합은 상대적으로 훨씬 덜 강하며 깨어지지 쉬운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시그마 결합을 한 원자들은 자유롭게 회전이 가능한 반면, 파이 결합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진 경우 회전은 어려워진다. 즉, 이중, 삼중 결합을 이룬 원자들의 자유로운 회전은 어렵다.
알킨과 sp 혼성화
삼중 결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sp 혼성화의 가장 심플한 형태를 보여주는 아세틸렌(C2H2)를 예로 들어보자. 아세틸렌은 탄소 2 원자와 수소 2 원자가 결합한 화합물로서 하나의 삼중 결합을 가진 알킨(alkyne) 탄화수소이다. 원자가껍질 전자쌍 반발 이론(VSEPR)에 의해 sp3 혼성화는 109.5॰의 각을 유지하는 정사면체, sp2 혼성화는 120॰의 각을 유지하는 평면 삼각형의 기하 구조를 가지듯이, sp 혼성화는 180॰의 각으로 전자쌍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선형 구조를 가질 것으로 예측된다.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2개의 sp 혼성화 오비탈은 나머지 혼성화에 참여하지 않은 두 p 오비탈과는 서로 수직으로 교차하는 위치에 있다. 이후 이 두 p 오비탈이 다른 원자의 오비탈과 서로 겹쳐 파이결합을 이루려면 어쩌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싶다. 2개의 파이 결합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삼중 결합이 이루어진다.
이중 결합과 삼중 결합
앞서 sp2 혼성화에서 나타나는 이중 결합과 sp 혼성화의 삼중 결합 모두 무조건 단일(시그마) 결합이 먼저 형성되고 추가적으로 파이 결합이 일어남을 볼 수 있다. 즉, 이중 결합은 하나의 단일 결합과 추가로 하나의 파이 결합, 삼중 결합은 하나의 단일 결합에 추가로 2개의 파이 결합이 일어난 것이다. 추가적인 파이 결합이 일어나는 이유는 혼성화 후 남은 p 오비탈들간의 결합이다. 혼성화가 파이 결합을 설명하는 것이다.
단일 결합을 이룬 원자들의 회전이 자유로운데 비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파이 결합이 더 해지면 회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억지로 힘을 가하여 회전하려 든다면 결합은 깨어질 것이다. 분자들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혼성화를 통해 더욱 자세히 이해하게 된다.
시그마 결합과 파이 결합 비교
강력한 공유 결합의 형태인 단일(시그마) 결합과 이중, 삼중 결합을 만드는 파이 결합이 어떻게 혼성화와 관련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시그마 결합과 파이 결합의 차이점을 간단히 비교해 보자면 아래 표와 같다.
그리고 혼성화 종류별로 시그마 결합과 파이 결합을 비교한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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