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생물학/생화학

키랄성 3: 호모키랄성(homochirality):생명체의 선택

Jo. 2025. 1. 13. 03:17

앞의 두 글에서, 같은 재료를 같은 배열로 구성하여 만들었지만, 4개의 서로 다른 원자(혹은 치환기)에 연결된 (주로) 탄소를 중심으로 3차원적인 배열이 살짝 달라져, 거울상 이미지로 쌍둥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상 서로 겹쳐지지는 않는(키랄성)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er)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역사적으로 두 거울상 형태를 어떤 방식으로 구별하여 이름을 붙여 왔는지도 살펴보았고, 각각 갖고 있는 특징이 같은 비율로 혼합되어 있을 때는 그 특징이 상쇄되어 사라져 버리는 혼합 형태(라세미혼합물)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제 이 거울상 이성질체가 실제로 우리의 생명활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살펴보자.  

생명의 선택: 호모키랄성

생명체에게 키랄성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아마도 가장 중요한 화두가 호모키랄성(homochirality)일 것이다. 앞선 파스퇴르의 실험에서 두 가지 형태의 거울상 이성질체가 같은 비율로 존재하는 것을 라세미 혼합물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호모키랄성이란 이 두 개의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er) 중 특정한 하나의 형태만을 독점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말로써 동종키랄성, 단일 키랄성이라고도 한다.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하나(단일)의 이성질체만을 포함하여 만든 약물을 의미하는 Enantiopure와 같은 비슷한 개념과 혼동되지 않도록 이 글에서는 ‘호모키랄성’이라는 용어로 쓰겠다. 호모키랄성이 중요한 이유는 생명학적 시스템에서 생명체들이 같은(homo-) 키랄성을 일관되게 보이기 때문이다. 생명체 내 분자들이 특정 이성질체만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며 모든 키랄 형태가 하나로 통일되어 보인다는 점이, 무작위로 반반씩 섞여 있는 라세미 혼합물과 구별된다.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분자를 합성하면, 키랄성을 가지는 분자라면 반드시 라세미형태로 합성된다는 점 역시 매우 중요하다. 뒤에서 이어 다룰 약물학에서 특히 주의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다. 

 

호모키랄성은 자연에서, 특히 생물학적 체계에서 매우 뚜렷하게 관찰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포유류, 척추동물, 식물, 가장 작은 미생물, 심지어 원자와 그 입자 및 하위 입자조차도 키랄성을 갖고 있다. 키랄성은 기본 입자 물리학에서 천문학, 생명화학에 이르기까지 현대 과학의 모든 부분에 퍼져있는 구체적인 현상으로써, 생명체들이 키랄 분자를 기반으로 스스로를 복제하고 진화하고, 또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흥미롭게도 생명체 내의 분자들은 생성 가능한 2개의 거울상 이성질체 쌍 중에서 대사 작용에 한 형태만 독점적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생명체 내에서 한 형태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체는 아미노산, 탄수화물, 지질, 핵산등이 거울상 이성질체 중 어느 한쪽을 구별하여 작동하는 손잡이성으로 작동하는 환경이다. 생체 내 탄수화물은 주로 D형이고, 아미노산은 L형이며, RNA와 DNA는 그 구성요소에 각각 D-리보스(ribose)와 D-디옥시리보스(deoxyribose)를 포함하고 있다.

 

유전자 정보를 복사하고 저장하는 RNA와 DNA 핵산이 호모키랄성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일 핵산을 이루는 당과 염기가 올바른 서열로 정렬되지 않는다면 이들 간의 수소결합이 최적화되지 않아 우리가 알고 있는 매끈하고 안정된 나선구조를 형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만일 D형 당과 L형 당이 모두 중간 중간 혼합되어 전체적인 나선 구조가 왜곡된다면 현재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만일 구조의 어느 일부라도 왜곡된다면 DNA 폴리머라제(Polymerase)와 같은 중합효소들이 제대로 유전자 정보를 복제하지 못할 수도 있고, DNA 자체 수선 메커니즘도 영향을 받아 수선 효소들이 손상 부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화학적 복제 메커니즘이 순조롭게 작동하지 못해 중합과정에서 에러가 많이 발생한다면 유전자 돌연변이율도 증가할 것이다. 별로 즐겁지 않은 상상이다. 최적의 자기 복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생존과 번식에 안전을 기하기 위해 생명체가 내린 가장 현명한 판단과 선택은 호모키랄성이 아니었을까.

 

자연이 왜 이렇게 하나의 키랄성 경향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은 아직 찾지 못한듯 하다. 생명의 기원을 논함에 있어, 왜 생명체가 단일 형태의 호모키랄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 반대편 거울상 이미지로는 형성되지 않았는지는 언제나 늘 풀리지 않는 오래된 미스테리였다. 생명체가 출현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왼손의 속성과 오른손의 속성을 가진 두 형태가 모두 공존하다가 이후 서서히 한 형태가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생명체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단 하나의 단일 키랄성으로 수렴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보다도 우주 탄생 당시에도 손잡이성(handedness)이 존재하긴 했었는지 등의 질문들은 아직 과학계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라고 한다. 분자 수준에서 볼 때,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당지질(glycolipids), 폴리뉴클레오타이드와 같은 생체 고분자들이 왜 D-형 당과 L형 아미노산을 기반으로 형성되는지, 이론적으로는 그 반대편 거울상 이미지를 기반으로 형성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왜 굳이 D형 당과 L형 아미노산으로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그 반대형인 L-형 당과 D-형 아미노산으로부터도 실제로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었을지, 라세미혼합물에서는 생명체가 생겨나지 못하고 호모 키랄성을 가져야만 생명체가 발생하는가 등 수많은 질문들을 해볼 수 있다. 

 

호모 키랄성의 기원에 대한 가설: 패리티 위반(parity violation)

두 거울상 이성질체 간의 균등성이 깨어지고 어느 한쪽이 지배적으로 우세하게 된 단일 키랄성 즉, 호모 키랄성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하는 여러 가설들은 있다. 그 중 한 가지만 간단히 들여다보자면, 패리티 위반(parity violation) 가설을 들 수 있다.

 

물리학은 우주에 존재하는 4가지 기본 상호작용, 즉 중력(Gravity),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 약한 핵력(Weak Nuclear Force), 그리고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며, 패리티(Parity)는 반사된 환경에서 이러한 상호작용이 동일하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대칭성 개념이다. 그런데,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에서는 패리티가 보존되지만, 약한 핵력에서는 패리티 대칭이 깨진다는 사실이 20세기 중반에 발견된 것이다. [1] 실험을 통하여 (x, y, z) 좌표를 거울에 반사시키듯 반대편 축으로 (-x,−y, −z) 패러티 반전시켰을 때에도 거울상과 그 쌍둥이에게 모든 물리법칙이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이 글자 그대로 깨어진 것이다. 이러한 ‘패리티 위반’의 결과로 똑같은 에너지 상태를 보일 것으로 추정되었던 바닥상태(ground state)의 두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ers) 사이에 매우 미미 하지만 분명한 에너지 차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이는 둘 중 어느 하나가 에너지적으로 더 안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에너지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한 비대칭성이 결국 키랄 분자 중 어느 한쪽이 더 우세하게 되도록 하였고, 이것이 호모 키랄성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로 이어져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긴 하나 아직까지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한 이성질체의 미미한 에너지적 우위가 생물학적 분자를 한 방향으로 모두 밀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견해도 물론 있다. [2] 

 

우주는 왼쪽 속성을 선호한다?

패러티 위반은 호모키랄성 뿐만 아니라 우주의 왼쪽 속성과 관련되기도 한다. 원자핵은 같은 극인 양성자끼리 서로 마구 밀어내려고 난리법석일 것이고, 전하가 없는 중성자는 별 도움 안 되는 상황에서, 이들 모두를 모조리 몽땅 함께 꽉 붙잡아 원자핵을 유지하는 것이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이다. 이렇게 핵을 구성하는 중성자와 양성자들의 수를 보자면, 그 들은 일반적으로 적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적정한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원자핵이 불안정해지므로 베타 붕괴와 같은 방사성 붕괴현상을 통해 다시 안정된 상태로 전이를 꽤 하게 된다. 즉, 베타 붕괴라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불안정한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의 안정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생겨나고 이를 주관하는 것이 약한 핵력(weak nuclear force)이다. 

 

베타 붕괴(beta decay)

중성자가 과도하게 많으면 β⁻(베타 마이너스)붕괴가 일어나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환되고, 양성자가 과도할 경우 β⁺(베타 플러스) 붕괴를 통해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환된다. 이러한 변환이 이루어지는 배경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중성자와 양성자는 둘 다 쿼크(quark)로 구성된 입자지만, 각각 업 쿼크(up quark)와 다운 쿼크(down quark)의 수가 다르게 구성되어있는데 이 쿼크의 수를 바꿔주면 중성자와 양성자 간에 변환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환할 경우에는 그 과정에서 전자(electron)와 반중성미자(antineutrino)가,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양전자(positron)와 중성미자(neutrino)가 방출된다. 이러한 쿼크 간의 변환은 W/Z 보손(bosons)이라는 소립자들에 의해 매개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약력간의 상호작용에만 나타나는 중성미자(neutrino)가 항상 관찰자를 향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여 왼쪽성을 가진 입자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험을 통해 베타붕괴가 일어날 때 중성미자가 특정방향으로 비대칭적으로 방출되는 것이 관찰되어 약한 핵력이 좌회전 편향을 가지게 되어 아주 미세하지만 패리티 대칭성을 위반함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왼손 스핀을 가지는 아원자만이 붕괴한다는 사실로부터 호모 키랄성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가설에서 더 나아가 우주 자체가 왼쪽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 역시 제기된 것이다. CERN(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의 Large Hadron Collider로 수많은 아원자 입자의 붕괴를 실험한 바 오직 왼쪽 스핀을 가진 다운 쿼크만이 업 쿼크로 붕괴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3] 

 

지구 초기 환경에서 어느 한 형태가 더 안정적이거나 형성되기 용이하여 다른 반대 유형보다 우세하여 선택되었을 수도 있고, 앞서 설명한 패리티 위반으로 어느 한쪽이 우세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 다양한 가설들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생명체의 작동 메커니즘을 지켜본 봐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자연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피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하지 않는다. 생명활동은 에너지 효율적이어야 하며, 두 개의 형태를 나란히 모두 사용한다는 것은 경쟁 경로를 갖는다는 것이고, 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생체내 반응 경로에서 불필요한 복잡성을 야기하여 에너지 소모를 증가시키고 반응의 정확성도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 단일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생체내 다양한 반응을 단순화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기능을 최적화할 수 있다. 여러 아미노산이 모여 하나의 효소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상황을 가상해보자. 그 수많은 아미노산들이 공통적으로 L-형이라면 단백질 접힘의 방향이 방해받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것이다. 

 

Tipping point

아주 예전에 흥미롭게 읽은 ‘Tipping point(결정적 전환점)’라는 책에서 당시 VHS와 Betamax가 비디오 테이프 표준을 놓고 서로 막상막하 경쟁하다가 VHS가 51%를 점유하게 되었을 때 비록 단 1%의 작은 초기의 차이였지만 이후 스스로 증폭되는 피드백 또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로 결국은 절대적으로 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되어 상대방 경쟁제품을 제압하고 압도적으로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던 스토리가 떠오른다. 어쩌면 비슷한 과정으로 호모키랄성도 형성되어 한 가지 유형이 최종 승자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생명체의 작용에 있어 모든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 수많은 다양한 효소들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자신이 작업(?)해야 할 대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져만 기능할 수 있다. 세포 내 신호전달을 위한 관문인 수용체(receptor) 들 역시 자신과 맞는 리간드들과만 결합해야 한다. 고도의 정확성을 요하는 이들에게는 입체선택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입체 선택성(stereospecificity)

예를 들어 포도당이 생체내 대사에 참여하려면 각종 효소와 수용체(receptor)들이 이들을 인식해야 하는데 잘 알다시피 인체에서 발견되고 생체대사에 참여하는 포도당(glucose)은 D-형 포도당이다. 효소와 수용체와 같은 거대 단백질들도 역시 자체적으로 입체적인 구조들을 가지고 있고, 이 들이 포도당을 인식하여 결합하고 반응하려면 서로 간의 입체구조가 맞아떨어져야한다. 효소가 화학반응을 촉매 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한 생체 분자들 중에서 콕 집어서 자신과 특이성이 맞는 분자들을 정확하게 식별하여 결합하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 중 하나가 입체적 결합 위치이다. 이를 효소의 입체선택성이라고 한다. 효소의 활성부위(active site)는 특정한 방향성과 3차원 입체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특정한 입체구조, 즉 입체적 정열이 맞아떨어지는 기질 분자만을 선택하여 촉매반응을 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수용체는 신호 분자(리간드)에 결합하여 생물학적 신호를 세포 내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수용체 역시 효소처럼 결합부위가 3차원 구조를 가지고 있어 맞춤형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결합하는 리간드에 매우 특이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수용체는 특정 호르몬에만 결합해야 만한다. 정확한 신호전달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겠는가. 따라서 수용체는 리간드의 입체구조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수준으로 인식하여 자신과 맞는 입체 구조를 가진 리간드에만 결합한다. 물론 막을 통한 확산과 같은 수동적 과정은 거대 분자 간의 섬세한 상호 작용을 수반하지 않으며 입체 선택성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지만 효소나 혹은 약물처럼 특정 수송체 시스템과 같은 상호 작용이 필요한 분자들에게는 입체선택성이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생체내의 수많은 효소들과 수용체들은 두 개의 거울상 이성질체 중에서 하나의 형태만 선택한다. 만일 두 개의 형태 중 하나를 그때그때 선택해야 한다면 효소의 대사에 불필요한 과부하가 생길 것이며 정확성과 안정성 그리고 반응속도 역시 분명히 저하될 것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두 가지 이성질체: 두가지의 향

생명체 내의 모든 키랄 분자가 항상 호모키랄성을 갖는 것은 또 아니다. 때때로, 유기체에서 화학적 화합물의 두 가지 형태의 거울상 이성질체가 모두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때 이들의 맛, 냄새를 비롯한 기타 특성이 서로 크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카르본(Carvon)은 테르페노이드 계열의 물질이다. 다른 많은 이소프렌 기반 천연물질들 처럼 주로 주변 환경에 대한 반응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대사산물인데 거울상 이성질체를의 쌍을 만들고 그 두 쌍은 각각 서로 다른 향을 가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이성질체가 각각 다른 후각 수용체에 결합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향으로 인식된다고 말할 수 있다. S-형 카르본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강하고 매운 캐러웨이 씨앗향이 나고 R-형은 스피어민트 같은 향긋한 박하향이 난다. 이들이 끓는점, 비중, 외관들이 모두 같음에도 서로 전혀 다른 향이 난다는 것이 참 신기하지 않은가. 이소프렌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이전 글을 참조하자.

이소프렌, 테르펜, 이소프레노이드, 테르페노이드 그리고 콜레스테롤.

 

왜 이러한 자연의 분자들은 호모키랄성을 가지지 않고 두 가지 이성질체 모두를 생성할까. 이소프렌이라는 레고조각(?)이 모여 이루어진 이소프레노이드 또는 테르페노이드들의 기능을 살펴보면 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분자들로 알려져 있다. 선택적으로 하나의 키랄분자를 발현하는 것보다 복수의 이성질체를 통해 다양한 생태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여 자기 방어와 번식에 도움이 되도록 진화적 적응을 이룬 것일까. 불쾌한 캐러웨이 향으로 곤충이나 초식동물을 쫓아내는 방어 활동과, 향긋한 스피어민트향으로 자손 번식을 도와줄 수분 도우미 벌을 유인하는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석 이조의 스마트한 진화를 한 것이 아닐까. 자연은 욕심쟁이인가 보다. 또 다른 모노테르펜인 리모넨(limonene)의 경우, R-형은 오렌지 향으로 S-형은 레몬이나 소나무 향을 낸다. 자연이 비록 두 가지의 거울상 이성질체를 모두 생성하더라도 우리 생체 시스템은 이를 인식하는데 문제가 없다. 각각을 인식할 수 있는 결합 부위가 맞아떨어지는 수용체와 결합하여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모키랄성이든 쌍둥이 키랄성이든 우리가 특별히 걱정할 부분은 없다. 자연이 그렇게 만들었으면 아마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자연 상태에서는 어떠한 혼란도 없어보인다. 

 

사실, 생명체내의 모든 아미노산이 L형인 것도 아니다. 이미 일부 박테리아 세포벽에서 D형 아미노산이 발견되어었을 뿐 아니라, 우리 인간의 뇌조직 치아, 수정체, 혈장, 소변, 타액, 양수, 피부 뼈 등에서도 D형 아미노산이 일부 발견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이가 들면 D형 아미노산이 늘어나면서 생리학적 변화가 생겨나고 나아가 백내장, 동맥경화, 알츠하이머와 같은 노화와 관련된 질병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정 가공 식품 기술의 발달로 L형에서 D형으로 전환된 아미노산이 포함된 식품이 인체에 유입되고 있다는 흥미로운 견해도 있다. 가공음식을 피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 것인가. ㅎㅎ 

 

거울상 이성질체의 악몽

호모키랄성과 관련하여 가장 내가 접한 가장 끔찍하고 무섭다고 느낀 것은, 만일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반대편 거울상 이성질체를 일부 과학자들이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대한 것이었다. 만일 자연계에서 보이지 않는 시아노 박테리아, 혹은 특정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반대편 거울상 이성질체가 합성되어 광범위하게 확산된다면, 과연 인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시나리오였다. 먼저, 시아노박테리아를 먹고 사는 식물플랑크톤 등이 거울상 시아노박테리아가 생산한 물질을 섭취하기 힘들어지면 이에 기반하는 생태계 먹이사슬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 그리고, 시아노박테리아의 포식자들은 이들을 소화 분해 시키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 거울상 시아노박테리아는 아무 제제 없이 엄청난 속도로 증식할 수 있다. 결국 기존의 시아노박테리아와의 경쟁에서 이길 것이고 기존 생태계는 붕괴될 수 있다. 지구 역사상 시아노박테리아가 지구 대기에 산소를 도입시켜 생명체의 진화를 도와준 것처럼, 거울상 시아노박테리아도 지구의 대기를 바꿀 수 있다. 만일 생명체에 유해하고 반응성이 강한 대기 형태로 바뀌는 새로운 산소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작은 박테리아 하나가 생태계 균형과 진화 경로를 확 바꾸어버릴 수도 있는 정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다. 물론 과학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는 상상 시나리오지만, 이러한 가정을 통해 호모키랄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주의 생명체들도 호모키랄성을 가졌을까?

호모키랄성은 분자적 일관성을 가능하게하는 생명체의 고유한 바이오 마커로서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자 생명의 징표로 간주되고, 생명의 기원 또는 초기 진화의 전제 조건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외계의 생명체 탐사 과정도 현존하거나 또는 멸종되어 버린 생명체를 증명할 수 있는 강력한 지표로 키랄 물질과 호모 키랄성의 흔적을 찾고자 노력한다. 지금도 우주에  더 우세한 손의 속성을 가진 분자들이 있는지, 혹은 있었는지를 찾는 탐구가 계속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NASA의 탐사 장비설계에도 광학적 순도 분석이 포함되어 있는데, NASA의 화성탐사로봇 Curiosity Rover나, 유럽 우주국(ESA:European Space Agency)의 혜성 탐사선 로제타의 탐사로봇 Philae가 유기물을 채취하여 특정 키랄성의 우세한 현상(광학적 순도)을 측정하려는 시도들이 좋은 예이다. [4] 비록 아직까지는 결정적 결과를 얻지 못하였으나 후속 미션들이 지속적인 실험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 자료]

[1] The Origin of Biological Homochirality

https://cshperspectives.cshlp.org/content/11/3/a032540.full

 

[2] Chirality and the Origin of Life

https://www.mdpi.com/2073-8994/13/12/2277

 

[3] Only left-handed particles decay

https://www.nature.com/articles/524008b.pdf

 

[4] The Search for Chiral Asymmetry as a Potential Biosignature in Samples from Mars

https://ntrs.nasa.gov/citations/2021002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