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생물학/생화학

키랄성 1: 거울에 비친 쌍둥이 이미지, 손의 속성, 키랄성(chirality)

Jo. 2025. 1. 13. 03:16

거울을 사이에 둔 쌍둥이 이미지

거울은 그 앞에 놓인 물체를 반사하여 반대편에서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거울은 왼쪽과 오른쪽을 뒤집어서 보여준다. 물론 정사각형이나 축구공처럼 대칭적인 모양일 경우는 별 의미가 없지만, 비대칭적인 형상을 가진 물체라면 거울 속에서 방향이 달라져 거울 앞에 놓인 물체와 거울 안에 비친 물체의 형상들을 서로 포개어 놓아 보면(superimpose) 똑같이 겹쳐지지 않게 된다. 왼손을 거울에 비추면 반사되어 나타나는 형상이 곧 오른손의 모양인데,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 보고 있어 왠지 둘이 똑같아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사실 둘은 같지 않다. 나는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도무지 오른손에서 레이저 빔이라도 나가는지 오른쪽 고무장갑에 유난히 구멍을 참 잘 낸다. 남아도는 왼쪽 고무장갑이 많아 오른손에 끼고 재활용을 시도해 보았으나 잘 될 턱이 없다. 그냥 새로 사야 한다. 만일 양손의 모양이 똑같다면 고무장갑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글자들을 생각해 보자. 구급차와 소방차 들은 거울에 비쳤을 때 보이는 이미지로 글자를 아예 거꾸로 써놓고(mirror writing) 다닌다. 유사시 위급한 순간에 앞의 운전자들이 백미러를 통해 이 글자들을 한눈에 바로 읽고 신속하게 길을 비켜달라는 뜻이다. 아래 사진은 거울상 이미지라는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비대칭인 형상의 ‘B’처럼 글자 자체도 왼쪽과 오른쪽이 바뀌지만, 단어의 첫 글자로 가장 왼쪽에 있어야 할 글자 A가 가장 반대쪽 오른쪽에 가있다. 거울상에서는 좌우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손의 속성: handedness

기본적으로 모든 물체를 거울에 비추면 똑같은 거울상을 갖는다. 이때, 서로 마주 보는 두 이미지를 포개어 놓았을 때 서로 중첩되지 않는 다면, 이들은 비대칭성을 가지기 때문이고, 우리는 이 물체들이 손의 속성(handedness)을 갖는다라고 말한다. 왼손과 오른손을 가장 쉬운 예로 들어 붙인 이름인 듯하다. 이러한 속성은 생물과 관련된 생화학에서 무척 중요하다. 생명체를 형성하는 기본 구성단위들은 물론 생명 활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요한 생체분자들이 모두 이러한 손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분자 내의 3차원적 공간 배열을 다르게 하여 거울을 사이에 놓고 만든 것 같은 2개의 서로 마주 보지만 겹쳐지지는 않는 거울상 입체 이성질체를 가진다.

 

구조 이성질체와 입체 이성질체

이성질체는 크게 구조적 이성질체(Constitutional Isomers)와 입체적 이성질체 (Stereoisomers)로 분류한다. 이성질체(Isomer)는 같은 분자식을 가지지만, 구조나 배열이 달라서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다른 두 개 이상의 화합물을 말한다. 분자식은 분자의 구성 요소를 화학 기호로 나타내고 구성 원자의 종류와 수(ex CH4)를 보여주고, 구조식은 원자들의 배합을 보여준다고 할 때, 구조적 이성질체는 분자식은 같고 구조식은 다른 반면, 입체 이성질체는 분자식과 구조식, 원자들의 배치 순서도 모두 같지만, 오직 3차원적 배열만이 다른 이성질체를 지칭한다. 입체 이성질체 중에서도 특히 서로 마주 보는 거울상 이미지를 갖는 2개의 입체 이성질체 세트를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ers)라고 부르며 이들은 생체 분자를 다루는 생화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Enantiomers는 그리스어로 ‘정반대’라는 뜻을 갖는다. 거울상 이성질체라는 말이 생소하더라도 L 형 포도당과 D 형 포도당, 또는  L-아미노산과 D-아미노산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거울상 이성질체를 구별하여 부르는 이름들이다.

키랄성(chirality): 양손의 속성

물체나 분자가 비대칭적인 거울상 관계를 가지고 있고, 두 거울상을 아무리 회전해도 서로 포개어 겹쳐지지 않는 경우, 우리는 이들이 ‘키랄성(chirality)을 갖는다’고 말한다. 손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χειρ (cheir)"에서 유래한 말이다. 앞선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를 통해 손의 속성을 연상하면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손바닥끼리 포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손등 위에 손등, 손바닥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포개었었을 때 두 손은 모양이 다르다. 골프채, 양말, 가위, 나선형의 나사와 코르크 따개 등도 모두 ‘키랄성’이라는 공간적 속성을 가진 물체들이다. 즉, 키랄성을 가지는 분자는 ‘반드시’ 한 쌍의 거울상 이성질체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다시 탄소를 주목해야 한다. 단백질, 탄수화물, 핵산을 구성하는 중심 분자인 탄소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는 4개의 원자와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앞선 혼성 오비탈에 대한 글들에서, 혼성 오비탈 형성 과정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혼성화 유형이 sp3 혼성화이고, 이를 통해 4개의 원자 또는 치환기와 공유 결합(단일 시그마 결합)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입체적 비대칭성은 sp3 혼성화된 탄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면체의 구조에서 중앙의 탄소가 만일 서로 다른 4개의 원자와 결합한 경우에 문제의 거울형 비대칭 입체 이성질체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탄소 외에도 sp3 혼성화를 거치는 다른 원소(질소, 황, 인)들도 있다. 하지만 유기 화합물 형성 측면에서 본 비중이나 규모를 비교한다면 탄소가 독보적이다.

 

아래 그림에서 4개의 서로 다른 치환기를 가진 탄소는 비대칭적 키릴 분자를 형성하며, 이러한 탄소를 ‘키랄 중심(chiral center)’이라고 하며 ‘키랄 탄소’라고도 부른다. 이 분자를 반대쪽으로 180도 휙 뒤집어 놓았을 때 일부 원자들의 3차원 공간배열이 달라지고, 포개어 놓아 보았을 때, 이들은 중첩되지 않는다.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표현함에 있어 쐐기(wedge)는 관찰자와 가까운 쪽을, 실선(dash) 모양은 먼 곳 즉 뒤쪽으로 위치하는 것을 나타냄을 기억하자.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같은 원자들로 입체적 분자 배열이  다른 2개의 독립적인 분자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생체내 많은 분자들이 이러한 키랄성을 가지는 거울상 입체이성질체 쌍이다. 

 

탄소의 sp3혼성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4가지의 다른 결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4가지 결합이 서로 다른 대상과 이루어질 경우, 이 중심 탄소는 키랄성을 갖게 되어 키랄 분자 2개를 생성할 수 있다. 대부분의 키랄 분자들은 중심에 비대칭 탄소 원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같은 대상이 2개라도 존재한다면 키랄성을 가질 수 없음을 아래 그림에서 설명한다. 

 

 

* sp3 혼성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글을 참고하자.

혼성화 1: 혼성 오비탈 이론과 탄소의 sp3, sp2, sp 혼성화

 

키랄성이 무엇인지, 어떤 조건에서 형성되는지 살펴보았다. 이 키랄성이 우리 생명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논하기 이전에, 키랄성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관찰을 해보고 넘어가자. 다음글에서 두 거울상 이성질체 쌍을 구별하여 부르는 방법과 그 둘이 함께 혼재하는 형태인 라세미 혼합물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부터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