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sugar) 관련/탄수화물

탄수화물 3: 단당류의 고리화과정(피라노스 Vs 푸라노스)

Jo. 2025. 4. 6. 19:58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내부적 반응

개방형 사슬 구조가 고리형 링 구조로 어떻게 전환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 준비로 전기음성도와 친핵체/친전자체에 대하여 바로 앞글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제 단당류 중 가장 풍부하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20세기 최고의 화두가 된 글루코스, 즉 포도당을 예로 들어 고리화 과정을 살펴보자. 설명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용어도 글루코스로 통일하기로 한다. 키랄 센터를 가지는 글루코스의 구조를 잘 나타내는 것이 개방형 선형 사슬 구조로 표현하는 피셔투영법이다. 그리고 수용액에서 고리화된 포도당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하워드 투영법(Haworth projection)이다.  피셔투영법이 D/L 명명법에서 보았듯이 탄소 골격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었다면, 하워드 투영법에서는 탄소의 치환기들의 위치가 아래위로 표현된다. 기다란 체인줄이 우리 앞에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한쪽 끝을 다른 쪽 끝에 연결하면 고리 모양이 되어 목걸이가 될 수 있다. 가장 끝이 아니라 끝과 중간을 연결하면 고리 모양은 되겠지만 고리의 크기가 작아 목걸이는 힘들고 팔찌 정도는 될 수도 있겠다. 피셔투영법으로 그린 포도당의 구조를 아래 사진처럼 긴 사슬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슬이 한 부분을 사슬의 반대쪽에 연결하면 고리모양이 된다. 이러한 연결은 별도의 촉매의 개입 없이 같은 분자 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내부적 화학반응의 결과이다. 

긴 직선의 사슬을 링 모양의 고리로 만들기

 

고리화는 당단류가 단순한 분자구조를 넘어 더 복잡하고 다양한 탄수화물로 확장될 수 있는 첫 단계로서 매우 중요하다. 고리화를 통해 또 하나의 키랄중심이 생겨나고, 단당류는 이 새로운 키랄중심에서 두 개의 거울상 이성질체가 생성되면서 또다시 추가적으로 두 가지 구조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식물이 녹말을 형성하고 동물이나 인간이 글루코겐으로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단당류들을 무수히 결합시킨다. 셀루로즈와 같은 단단하고 강한 섬유질 구조나 곤충이나 갑각류들이 껍질을 만들기 위해서도 단당류를 수도 없이 연결해야 한다. 이 단당류들을 연결함에 있어 고리화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키랄 센터와 그 키랄 센터에서 생긴 두 개의 고리화 형태가 단당류 간의 결합에서 서로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당류의 확장을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로 피셔투영법으로 표현된 사슬 구조를 고리형 구조로 전환시켜 보자.

 

피셔투영을 눕히고 5번 탄소의 치환기를 회전하자

원래 피셔투영은 단당류의 키랄중심들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기위해 고안된 대표적인 방법이므로, 이 구조에서 5번의 키랄 탄소에 연결된 OH기가 오른쪽에 있으면 D-형, 왼쪽에 있으면 L-형 글루코스로 구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왼쪽 오른쪽 방향성이 중요하단 것인데, 글루코스가 고리화될 때, 오른쪽에 위치한 치환기들은 하워스투영에서 모두 아래쪽으로 위치하게 됨으로, 피셔투영을 오른쪽으로 눕혀 보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그리고, 5번 탄소의 OH기를 회전시켜 바깥쪽으로 빼 내보자. 4번 탄소와 5번 탄소를 유지한 채 나머지 3개의 치환기를 살짝 회전시키면 된다. 이들은 모두 단일 결합(sigma bond)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회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리를 편의상 바꾸어놓으면 5번 탄소에 연결된 수소(H)의 위치가 하워스 투영에서 왜 아래에 위치하는지 설명된다. 아래 예의 글루코스는 1번 탄소의 알데하이드기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키랄탄소인 5번 탄소의 OH기가 오른쪽에 위치하므로 D형 글루코스이다. 

 

단당류의 개방형 사슬구조에서 고리구조의 전환 1: 피셔투영법에서 5번 탄소의 치환기들을 회전시킨다.

5번 탄소의 치환기들을 회전시킨 결과로 OH가 맨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OH기가 1번 탄소의 카르보닐기(C=O)를 향해 간다. 저 위의 사진 속 체인처럼 선형의 사슬 구조가 굽어지면서 서서히 고리모양을 띄어간다. 사슬의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이 연결되는가에 따라 고리 모양은 달라진다. 고리화된 글루코스를 표현하는 하워스투영법은 관찰자에게 가까운 쪽은 쐐기모양의 짙은 선으로 먼 쪽은 얇은 선으로 나타내 원근을 표현한다. 피셔투영법에서 오른쪽에 있던 치환기들이 하워스투영에서는 모두 아래쪽을 향하고 있음도 놓치지 말자.

 

친핵체의 친전자체 공격

이제 고리를 닫아 링을 완성시킬 내부반응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앞 글에서 전기음성도와 친핵체/친전자체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다. 1번 탄소의 카르보닐기의 산소와 탄소는 이중결합(C=O)을 맺고 있다. 이때 탄소는 sp2 혼성화 상태로 산소와 하나의 시그마결합과 하나의 파이결합을 맺고 있는 상태이다. 혼성화와 시그마/파이본드는 별도의 글에서 상세히 알아보았다. 여기서 전기음성도가 훨씬 강한 산소는 공유하고 있는 전자를 강하게 자기 쪽으로 당겨 부분적인 음전하(δ-)를 띠고 있고, 상대적으로 전자를 산소 쪽으로 빼앗긴 탄소는 전자밀도가 낮고 전자가 부족하여 전자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친전자체가 된 상태로 부분적인 양전하(δ+)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5번 탄소의 OH기는 어떠한가. 이 OH기의 산소는 두 개의 공유결합을 맺고 있고 2개의 비공유전자쌍을 갖고 있다. 이 산소는 두 쌍의 비공유전자쌍 중 한쌍을 내놓으면서 친전자체와 공유결합을 엄청 맺고 싶어 하는 친핵체이다. 친핵체인 산소가 친전자체인 카르보닐기의 탄소에게 대시(공격)한다. 

단당류의 고리화 과정 2 : 5번 탄소의 OH기가 1번 탄소의 카르보닐기 탄소를 친핵제 공격한다.

 

아노머 탄소(anomeric carbon)의 탄생

카르보닐기의 탄소를 주목해 보자. 탄소는 4가 원소이므로 4개의 결합을 맺을 수 있는 데, 이 상태의 탄소는 이미 4개의 결합을 맺고 있기 때문에 다시 산소와 공유결합을 하기는 곤란하다. 5개 결합을 맺을 수는 없으니 하나의 결합은 버려야 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시그마결합보다 파이결합이 결합력이 약하므로 이중 결합 중 파이결합을 끊고 과감하게 친핵체 산소와 결합한다. 이때 파이결합이 끊어지면서 파이 결합을 맺고 있던 전자들은 산소(카르보닐기의) 쪽으로 밀려 당겨져 이 산소는 더욱 음전하가 강해진다. 음전하를 띤 산소는 수용액 상태에서 주변에 존재하는 양성자를 잡아당겨와 결합하여 OH기가 된다. 1번 탄소가 카르보닐기라는 것은 이중결합을 갖는다는 것이고, 이중 결합을 가지면 키랄 탄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개방형 사슬구조에서 1번 탄소는 키랄탄소가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친핵체인 산소의 친전자체 탄소에 대한 공격이 사실은 단당류 고리화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카르보닐기의 이중결합이 끊어지면서 산소와 결합하는 순간, 1번 탄소는 키랄탄소가 되었고 이렇게 새로 탄생한 키랄탄소를 아노머 탄소 (anomeric carbon)라고 부르는데, 이 지점이 바로 앞으로 벌어질 단당류의 무궁무진한 행진의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이 아노머 탄소가 만드는 두 개의 새로운 형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한편, 친핵체 공격을 펼친 5번 탄소의 산소는 어떻게 되는가. 일반적으로 산소는 2개의 공유결합과 2쌍의 비공유전자쌍을 가질 때 안정적(공식 전하가 0)인데, 아래 그림 6번에서 볼 수 있듯이, 친핵체로서 전자쌍 한쌍을 카르보닐기의 탄소와 공유결합을 맺고 나니 3개의 공유결합과 1쌍의 비공유전자쌍을 갖게 되어 즉, 공식전하(formal charge)가 +1이 되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전자 밀도도 낮아져 부분적인 양전하를 갖게 된 상황이나, 고맙게도(?) 수소가 산소에게 전자를 남기고 양성자(H+) 상태로 떨어져 나감으로써 전자를 받은 산소는 중성이 되어 다시 안정된 상태가 된다. 이때 떨어져 나간 양성자는 수용액 상태에서 주변의 다른 물분자와 결합하여 하이드로늄이온을 형성하기도 한다. 고리화가 왜 수용액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일어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글루코스가 안정적인 고리구조를 이루었다.  

 

단당류의 고리화 과정 3: 친핵체 공격으로 파이결합이 깨어지고 고리구조완성

 

의자형 구조(chair conformation)

글루코스가 사슬구조로부터 고리화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고리화되기 전 개방형 선형 구조의 단당류를 표현하는 피셔투영은 탄소 골격을 세로(수직) 방향에 놓고, 이 골격에 연결된 치환기들(OH기와 H)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위치시켜 보여주고, 이 탄소 골격이 닫히면서 고리화되면 이 고리화된 구조가 6원소 고리인지 5원소 고리인지를 잘 표현해 주도록 특화된 것이 하워스투영이다. 하워스 투영은 고리화 되기 전 피셔투영의 치환기 위치를 그대로 받아 피셔투영의 오른쪽에 있던 치환기는 아래쪽을 향하도록, 왼쪽에 있던 치환기는 위쪽에 있도록 위치시켜 표시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오른쪽/왼쪽, 위쪽/아래쪽은 실제 분자의 3D 구조에서의 절대적인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 골격을 기준으로 한 상대적인 방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제 공간의 위치와는 다를 수 있다. 이렇게 피셔투영과 하워스 투영은 둘 다 2차원 평면에 놓인 것처럼 매우 단순화시켜 구조를 표현하기 때문에 둘 모두 실제의 단당류 입체 구조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두 투영법은 나름대로의 목적과 용도가 분명하기 때문에 각자 중요한 쓰임새와 장점을 가진다. 피셔투영법의 경우 탄소골격 내 다양한 키랄 탄소로 인해 생기는 입체 화학적 구조를 직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피셔투영은 다양한 입체 이성질체들 간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서로 구별하기 쉽게 해 줄 뿐만 아니라, L형과 D형으로 구별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하워스 투영법도 몇 원소 고리 구조인지 쉽게 식별할 수 있게 해 주고, 고리화로 생기는 두 아노머(α, β) 형태를 직관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하여 이당류를 비롯한 단당류 간의 결합 시 글리코사이드결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깔끔하게 보여주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 α, β 아노머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룬다.)

 

그렇다면 분자 내 결합각도와 입체배열을 모두 고려하여 실제적인 입체구조를 최대한 보여주는 방법도 필요한데, 이것이 글루코스와 같은 6원소 고리구조 단당류(pyranose)의 경우는 의자형 구조(chair conformation)이고, 다음 글에서 살펴볼 과당(fructose)과 같은 5원소 고리(furanose) 구조의 경우는 봉투형 구조(envelope conformation)이다.  

 

단당류의 키랄 탄소들이 주변의 4개의 치환기와 연결되면 sp3혼성가 일어나 분자 간 109.5°의 결합각을 유지하면서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고리구조를 가지려 하는데, 이 결합각을 유지하려면 실제 약간 비틀어진 형태를 취하게 되기 때문에 6원소 고리 구조는 의자형이, 5원소 고리구조는 봉투형이 된다. 이 두 형태가 가장 안정적이고 에너지가 낮은 상태를 보여주는 구조이다. 캠핑용 접이용 의자와 좀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흠...

다양한 단당류의 표현법: 피셔투영, 하워스투영, 의자형 구조

 

축방향과 수평 방향

의자형/봉투형 구조에서는 고리 평면을 기준으로 하여, 고리에서 수직으로 위아래로 튀어나와 돌출되어 것을 (axial) 방향으로, 고리 평면과 거의 평행하게 고리의 연장선처럼 옆으로 뻗어 있는 방향을 수평(equatorial) 방향으로 정의하여 치환기들을 그린다. 관행적으로 5번 탄소의 산소(빨간색)를 오른쪽 상단에 위치시켜 그린다. 수평 방향에 치환기들이 위치하면 자리 장애가 최소화되어 분자 구조가 더 안정적인데 특히 큰 치환기가 수평방향으로 있을 때 더 안정적이다. 자리 장애(steric hindrance)란 쉽게 말해 분자 속에서 치환기들이 너무 가까이 있어 서로 부딪히는 현상이다. 우리가 사람이 꽉 찬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쓰듯, 분자도 ‘공간 싸움’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에너지를 쓰게 되므로, 자리 장애가 적다면 더 평안하고 안정된 상태라고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포도당에서는 대부분의 -OH기가 적도 방향에 있을 때 가장 안정한 구조가 된다. 모든 대형 치환기(-OH, -CH2OH)가 수평 위치에 배치되어 있는 β-D-글루코스가 아노머 탄소가 축방향에 있는 α-D-글루코스보다 더 안정적이다. 고리 평면을 기준으로 치환기간의 거리와 배치를 고려하면 분자의 안정성과 반응성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의자형 구조를 통해 보다 사실적인 분자 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로 하워스 투영이나 의자형 구조에서는 입체화학적 정보를 더 보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든 수소는 표시를 생략한다. 

 

6각형의 피라노스 Vs 5각형의 푸라노스

고리화와 함께 피라노스와 푸라노스라는 새로운 명칭이 등장한다. 위 체인 사진을 다시 떠올려보자. 체인의 어느 부분을 끝과 연결하는가에 따라 고리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5번 탄소가 아닌 6번 탄소의 OH기가 1번 탄소를 공격한다면 7개의 원소로 이루어진 고리(7 membered ring)가 생길 수도 있고, 4번 탄소의 OH기가 공격한다면 5원소 고리구조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7원자 고리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아 실제로 관찰되지도 않으며, 5원자 고리 역시 6원자 고리에 비하면 덜 안정적이고 드물게 나타난다고 한다. 4개의 탄소와 1개의 산소로 구성되는 5원소 고리 구조를 가진  단당류를 푸라노스(furanose), 5개의 탄소와 1개의 산소가 포함된 6원소 고리 구조를 가진  단당류는 피라노스(pyranose)라고 한다. 피라노스(pyranose)와 푸라노스(furanose)는 각각 유기화합물의 피란(pyran)과 푸란(furan)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피란은 5개 탄소와 1개의 산소로 구성된 6각형 고리를 가진 화합물을 말하고, 푸란은 4개의 탄소와 1개의 산소로 구성된 5각형 고리 구조의 화합물을 말한다. 따라서 당을 의미하는 ‘-ose’를 붙여 피라노스는 피란구조를 가진 당을, 푸라노스는 5각형 고리구조를 가진 당을 의미한다. 단당류를 부를때 자주 나오는 표현인데 6각형 고리구조와 5각형 고리구조를 나타내는 명칭임을 꼭 기억하자. 위에서 본 고리화의 경우, D형 글루코스가 6원소 링구조를 만들었으므로 ‘D-gluco-pyranose’라고 더 자세한 명칭을 붙일 수도 있다. 이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6탄소 알도스의 대표주자인 글루코스의 고리화 과정을 상세히 알아보았고, 더불어 그 구조를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의자형 구조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 고리화를 통해 생긴 중요한 변화인 아노머 탄소와 아노머 탄소가 형성시키는 두 가지 입체 구조에 대하여 알아보자.